저소득 고령가구를 위한 식생활 자립 커뮤니티 키친 프로젝트
- 제안기간: 2025.05.26. ~ 2025.06.02.
- 작성자: 이지수
- 작성일: 2025.05.26. 18:01
- 조회수: 5
의성에 살면서 가장 힘든 건 끼니 문제다. 혼자 사는 어르신 댁에 들어가 보면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 밥은 항상 어제 것이고 국은 대체 언제 끓인 건지 모를 정도로 시커멓게 우러나 있다. 나물 반찬이든 소시지든 결국 찬장에 넣어둔 그대로 며칠이 간다. 그러다가 폐기물이 되거나, 그냥 또 먹는다. 어르신들도 아신다. “알지, 근데 귀찮고, 아깝고, 누가 해주겠노.” 이건 복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니라, 삶을 인간답게 연결하는 최소한의 리듬이다. 누가 밥을 차려주는 게 아니라, 같이 밥을 짓고 나누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아이디어는 의성군 내 읍면단위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공 식생활 커뮤니티 키친’ 조성 사업이다. 형태는 간단하다. 마을회관이나 유휴 컨테이너, 폐가정집 등을 리모델링하여,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한두 명씩 순번으로 ‘당번’을 맡고,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구조다. 끼니는 무료가 아니다. 하루 1,000원 또는 반찬 한 가지를 가져오면 된다. 누가 반찬을 안 갖고 와도 좋다. 중요한 건 ‘같이 차린다’는 경험 자체다. 매일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매일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은 모두에게 남는다.
초기 운영은 의성군 복지정책과와 연계된 노인일자리사업 예산 일부를 전환하여 커뮤니티 키친 전담팀을 두고, 읍면별 담당자가 마을 단위로 설계와 조정 업무를 수행한다. 식재료는 의성 로컬푸드 출하 농가의 B급 작물(못난이 채소, 소비기한 임박 제품 등)을 식품순환 기부시스템으로 유통하고, 조리자는 지역 내 요리 경험 있는 경단녀, 퇴직 급식조리사, 혹은 청년 활동가가 번갈아 맡는 순환 시스템으로 구축한다. 당번과 조리사는 일일 활동비를 받는다.
이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규모를 키우지 않는 것이다. 하루 10인분이 가장 이상적이다. 대량조리는 음식의 개성과 정서를 지운다. 대신 키친별로 다른 음식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 사업의 핵심이다. 예천에는 ‘반찬 뚜껑에 이름을 써준다’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일본 시즈오카에는 ‘노인들끼리 식당을 돌려가며 운영’하는 ‘하루 한 끼 협동조합’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지역성+돌봄+자율성을 결합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키친이 ‘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사권을 중심으로 조직된 미시 공동체다.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상태를 묻고, 약 먹는 걸 체크해주고, 요리법을 묻고, 혼자 살기 무서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누가 “내일은 나 못 와요” 하면, 누군가는 “내가 끓일게요”라고 답하게 된다. 행정이 만든 ‘식사’가 아니라, 마을이 복원한 ‘식사 문화’다.
이 사업의 지역 적합성은 말할 것도 없다. 의성은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화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독거노인·차상위 노인 비율도 높다. 특히 여성 노년층의 경우 배우자 사별 이후 홀로 장기간 식사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러나 마을 내 공동식당은 대부분 예산 의존형으로 운영되며, 실질적 정서교류와 자율적 참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시골의 식탁은 늦게 온다’는 말은 단지 배달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감각이 너무 늦게 도착한다는 은유다.
홍보 전략은 단순히 ‘좋은 사업이니 오세요’가 아니다. 오히려 입소문과 내부 확산이 주된 통로다. 각 키친에서 나온 밥상 사진, 어르신의 짧은 한마디, 매일 작성되는 손글씨 식단표 등을 모아 SNS나 마을 라디오 방송에 비정기적으로 송출하면 좋다. 어떤 날은 도시락 용기에 시 한 줄을 붙여 판매하거나, 혼밥하는 청년 대상 ‘조용한 식사 동행 신청’ 이벤트도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이 모델은 식사를 통해 마을을 다시 짓는 것이다. 마을이 다시 일상성을 갖는다는 건, 누군가의 식탁이 ‘혼자 먹는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자리’로 바뀌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식탁이 의성에 한두 개만 생긴다면, 어쩌면 고립은 줄어들고, 식사는 다시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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